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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24, 2020

[취재후] “별 거 아닌데 예민해”…성폭력 피해 사소화는 '직장 문화' - K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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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피해 사소화란?

4년 전 일하던 직장에서 사장으로부터 '야동을 봐야 결혼할 생각이 생기겠냐', '네 허벅지를 보니 살이 쪘다'는 등 성희롱과 수차례 성추행을 당한 A 씨. 몇 차례 회사 임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놔도 '남자인 나한테도 자주 그런다', '늙어서 그러니 이해하라'라는 답변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퇴사를 선택한 A 씨는 "만약에 제 옆에서 '이거 진짜 잘못된 일이야,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대응을 다르게 했겠죠"라고 말합니다.

'실수다', '네가 이해해라', '결국 피해자가 힘들어진다'는 등의 말들은 교묘하게 피해자를 압박하는 동시에 가해자를 두둔하는 전형적인 '사소화'의 수법입니다. '사소화'란 성폭력의 의미를 축소해 가해자의 행동을 사소하게 느끼도록 하는 표현들을 말합니다. 성폭력 통념 중 하나로 지적되지만, 피해자에 대한 낙인이나 비난, 의심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 피해 사소화는 직장 문화?

이러한 사소화에 대해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를 맡고 있는 이수연 변호사(이하 '이 변호사')와 한국성폭력연구소 부설연구원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이하 '김 연구원')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질문 1. 성폭력 사소화를 겪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보셨나요?

김 연구원 : 피해자 대부분이 '말을 해도 해결될 거 같지 않아서'와 같은 조직에 대한 불신, 그리고 '조직이 이 문제를 잘 알지 못하고 또 오히려 나한테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 등이 내면화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바로 말하지 못하고 또 이후에 계속해서 말하지 못한 것이 악순환으로, 지속적인 피해로 이어져서 상담 요청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변호사 :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 같은 경우에는 피해로부터 신고일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조직 내 성폭력 범죄 피해일 때 결국 조직에 알려지고, 그 상황에서 2차 가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부담을 고스란히 피해자가 떠안아야 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신고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질문 2. 피해를 사소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변호사 : 가해자들은 대부분 상급자이고 뭐 그 회사에서 회사나 기관에서 중요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고 나이도 대부분은 많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기관 내에서도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옹호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들이 있으니깐요.

김 연구원 : 이러한 피해 사소화는 직장 문화하고 관련돼 있어요. '별 거 아니야', '네가 예뻐서 그렇지', '어려서 그렇지', '딸 같아서 그렇지' 등 이러한 사소화가 쌓이다 보면 사실 조직 내에서 굉장히 무감각해져요.

질문 3. 왜 사소화를 경계해야 하나?

김 연구원 : 아 우리 회사에서 이런 정도는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구나,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 문제구나 이런 것들을 사실 모두가 학습하죠. 그래서 피해자의 피해가 지속하고 장기화할 뿐만 아니라 그다음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또 그다음의 가해자를 양산하는 것, 그렇게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변호사 : 가해자 입장에서도 주변에서 제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때 성인지 감수성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무뎌지고 그 가해 정도도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태도는 범죄 발생뿐만 아니라 범죄 예방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4. 주변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요?

이 변호사 : 직장 내에 다른 동료라든가 상급자라든가 다른 조직 내 구성원들이 문제로 인식하지 않거나 아니면 문제로 인식하더라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때 피해자가 거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입니다. 피해자는 초년생이라든가 아니면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 제기에 더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그리고 피해자는 '내가 너무 과민한가?', 아니면 '내가 여기서 말을 하면 안 되는 건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을 수 있고요.

김 연구원 : 누군가 나를 도와줄 수 있고 또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또 나를 도와줄 거라고 하는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도 사실 그것이 그냥 불쌍한 개인을 도와준다기보다는 하나의 조직 문화를 바꾸는 어떤 운동의 차원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도움을 받는 자나 혹은 도와주는 자나 같이 연대해서 조직의 어떤 문화를 바꿔내는 데에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질문 5.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 연구원 : 제일 중요한 것은 인권 감수성, 젠더 감수성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조직 내 평등함, 인간에 대한 평등, 인권의식 등이 없는 상태에서는 성희롱도, 성폭력도 없어지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직 문화가 왜 중요한지, 인권이나 사회적 약자, 차별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좀 더 논의하고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 후에 그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해 논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변호사 : 피해자의 동료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간 정도의 직위에 있는 사람들도 사실은 기관장에 의해서 본인의 이후 직장 생활이 결정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서 기관장의 태도가 중요하고요. 근데 기관장이 그러한 감수성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시스템, 매뉴얼이 중요한 것이고요. 그리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 기관 내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가해자가 기관장인 경우라든지 그때는 이제 외부에서 개입을 할 수 있는 그런 부분까지 매뉴얼에 다 마련돼야 하는 거죠.

■ 성희롱 목격한 10명 중 6명은 '침묵'

여성가족부가 2018년 직장인 9천여 명을 대상으로 성희롱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750명이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자 중 대다수인 81%는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습니다. 성적 불쾌감을 느꼈지만, 문제 제기조차 포기한 겁니다.

이러한 성희롱 중 80%는 회식 장소나 사무실에서 발생했습니다. 다시 말해, 10건 중 8건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희롱을 목격해 조치에 나서는 경우는 10건 중 4건에 불과합니다. '당사자가 아니라서'라는 말로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직장 생활 중 피해를 목격하고도 많은 사람이 '큰일이 아니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등 일상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사소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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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5, 2020 at 06:5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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